세계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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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선교회와의 관계  

직장 생활 중 사장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개종을 하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다니시며 유언으로 가족이 기독교로 개종하라고 하셨고, 개종한 사장님으로 인해 저는 뜬금없이 갑자기 직장에서 월요일 아침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의 종교배경은 불교였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곳에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서 왔던 정영섭 간사로 인해 DCF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1983년 2월 22일 결혼을 시작으로 김재구 장로님 부부와 함께 정영섭 간사의 인도로 부부 양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양육 교제인 그리스도인의 확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창세기가 어디 있는지 마태복음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아내(사모)가 답을 해 놓으면 그것을 보고 답을 하곤 했었어요. 비가 오던 양육이 있던 날,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데 정영섭 간사가 오지를 않자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준비한 음식을 먹고 갈려고 하는데, 그 불편한 몸(장애를 가지고 있었죠.)으로 비에 젖어서 나타난 정 간사님! 집을 찾지 못해서 비를 맞으며 2시간을 헤매다가 오셨다고 했죠. 그런 훈련시간 이후 강보형 목사님이 리더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과제물 검사를 마치신 후, 참석자들에게 모든 소지품들을 내놓으라 하시고 벌칙으로 모든  참석자들이 밖으로 나가서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돈을 1,000원씩 받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참석자들이 준비 없이 양육에 오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는 것이 벌칙의 이유였죠. 멀쩡하게 양복을 입은 젊은 사람이었던 나는 파출소로 들어갔습니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사실은 제가 여차여차해서 벌칙으로 1,000원을 얻어가야 합니다.” “벌칙이면 돈을 드리면 안 되겠네요.” 다시 길거리로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1,000원을 적선(? )받아 들어간 적이 있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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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의 사역지까지 
제자훈련 당시에 항상 듣는 말이 ‘여기서 양육 받는 사람들은 선교사로 모두 나가야 한다’였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 사람은 M교사를 보내는 선교사로 살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도둑(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양육을 받던 중 '엘 엘 로헤 박기환'(창 33:20)으로 나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고, 나를 사랑함으로 병이 나신 나의 신랑(아 5:8)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나의 아빠 되심(마 23:9 마 28:19)을 경험했습니다.
1986년 겨울 연합 수련회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고 1989년 3월 24일 소말리아를 향하여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3월 23일까지도 비행기 표를 사지 못했었죠. 그래서 간사들이 성남에 있는 이병호 간사 집에서 회의하고 그 때 헌금한 돈으로 24일 당일 항공표 구매해 오후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 사모는 둘째를 임신한 지 3개월째였어요. 소말리아에서는 언어훈련과 사역 준비였습니다. 그리고 9월 23일 둘째가 태어나고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듬해 9월초, 소말리아 내전으로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일단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DCF 본부에서는 선교사 현지 적응을 위한 [선교사 훈련 센터]를 준비하고 있었고, 몇몇 간사들은 벌써 인도, 방글라데시, 싱가폴, 필리핀 등을 답사한 후였습니다. 그리고 1990년 10월 말, 정병대 목사님과 함께 미션 센터 건립을 위한 2주간의 필리핀 탐방 이후 1991년 1월 필리핀에 입국했습니다.
1995년 3월부터 8월까지 인천 지부에서 파송된 선교사 후보생 3명(이성수, 고은숙, 구효실)과 공동생활을 통한 선교사 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훈련으로는 수영 배우기, 언어(영어)훈련, 선교학 개론, 전도 훈련, 선교사와의 대담, 선교계획 5개년 계획서 작성 등의 훈련을 수행하였고요. 그러나 후원자 모집 및 관리에 대한 준비 없이 파송되었기에 광야에서의 '하늘 바라기' 훈련은 수많은 무릎 꿇기의 훈련이었습니다. 
그렇게 평신도 선교사로서의 한 기간을 마치고 1996년 1월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수도 침례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1999년 1월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안식년, 안식달 없이 달려온 해외의 30년의 시간이네요. 

● 지금의 사역의 모습  
처음 개척 때부터 시작한 제자 양육은 많은 심각한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2010년 양육 중에 귀신들린 사람들이 나타났고, 청년들이 영적 실체와 자신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어려움을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있는 철야는 30분에서 1시간으로, 1시간에서 2시간으로,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어났고, 어떤 경우는 3시간이 지나가는데도 끝낼 수가 없도록 하나님의 임재가 계속되기도 하였습니다. 
2008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눅 4:43)라는 말씀에서 주신 ‘Kingdom of Heaven’과 ‘Kingdom of God’을 통한 복음과 구원과 교회 및 기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주셔서 성도들, 특히 청년들이 성경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모두가 양육을 받아야 될 필연성을 갖게 되었죠. 
그리고 그 결과 2019년 청년부 수련회에서 선교사로 26명의 청년이 헌신한 것이 말씀의 깊이와 양육에 대한 조그마한 평가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제 2대 리더들 3명은 모두 선교사로 헌신하였는데, 이들과 함께 2015년에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 선교 답사를 다녀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경비는 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적립했던 선교헌금에서 충당하였고요. 그리고 2017년에 제1호 M교사를 캄보디아로 파송하였고요. 그리고 나머지 두 헌신자들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요. 성경 공부, 교제, 말씀 읽기, 암송 2구절, Q.T, 1주간 시간 계획표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기도는 개인별로 하루 3시간 1주일에 3번인 [1-3-3] 운영원칙과 하루 2시간씩 1주일 동안 기도하는 [1-2-7] 원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박기환/안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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